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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칼럼] 현대적 삶의 방식 바꾼..기능성 강조한 바우하우스 디자인
2021-01-11 07:47:02
바우하우스 (BAUHAUS. 출처 구글)


1902년 앙리 반 드 벨데(henry van velde)는 바이마르에서 미술과 공예 세미나를 시작했다. 이는 1906년 그를 교장으로 미술 대학을 설립하는 데까지 확장되었다.

1919년 미술 아카데미와 합병된 이 학교는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를 교장으로 국립 바우하우스 바이마르(Staatliches Bauhaus Weimar)가 되었다. 바우하우스는 그 이후의 디자인 발전의 본거로 자리잡게 된다.

그로피우스(Gropius)가 바우하우스에서 교수 직에 임명한 사람들은 조각가 게르하르트 막스(Gerhard marcks)만을 제외하고 모두 추상과 입체파 회화의 대표자들이었다.

여기에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파울 클레(Paul Klee), 라이오넬 페이닝거(Lyonel Feininger),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 게오르그 무헤(Georg Muche), 라즐로 모홀리 나기(László Moholy-Nagy)가 포함되었다.

공예직에서 존재해왔던 디자인과 그 이행의 결합은 20세기 들어 발전하는 동안, 제품 생산의 산업적 방식이 급 진보하면서 나뉘어 지게 되었다.

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가 예술과 기술을 함께 아울러 새롭고 현대적인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따르고 있었다.


기술에는 예술이 필요치 않을 수 있지만 예술에는 분명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 모토였다. 이 생각은 사회적 기본 목표와 연관되었고, 말 그대로 예술이 사회에 닻을 내리게끔 하였다.

바우하우스 (BAUHAUS. 출처 구글)

바우하우스는 20세기로의 전환기에 특히 주거 문제에 큰 관심을 두었던 생활 개혁 운동의 사상에 의지했다.

어두운 방에 어두운 가구로 대변되는 19세기의 진부함이 혁파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편의 시설 형태가 들어섰다. 밝고 환한 방에서 사는 20세기의 현대적 개인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것이 그 안에 있는 생각이었다.

바우하우스의 근본적 목표는 ‘창의적인 건설과 관찰에 입각한 발견(inventive building and observational discovery)’이었다.

방법론적으로 알버는 이튼과 같이 디자인에 대한 귀납적인 접근법을 취하여 학생들이 탐색하고 탐구하고 실험하도록 허용했다. 인지 기술이 이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장려되었다.


이론이 그러한 방식을 유도한 것이 아니다. 대신 실험에 대한 분석과 논의에서 도출된 결론이 점진적으로 세련되어 지면서 일반적인 ‘디자인 이론’이 된 것이다.

1925년 바우하우스는 바이마르에서 그로피우스가 디자인한 데사우의 새로운 건물로 옮겼다. 바우하우스는 나치의 압력으로 문을 닫게 되기까지 7년간 이곳에서 유지되었다.

극단적으로 어려운 조건에서도 바우하우스 교수진과 학생들이 형성한 소규모 그룹이 1932년에서 1933년 베를린에서 사립 학교로 바우하우스를 존속시켰지만 끝내 1933년 여름 반 데 로헤(VAN DE Roche)에 의해 문이 닫기 기에 이른다.

바우하우스 (BAUHAUS. 출처 구글)

바우하우스(Bau-HAUS)의 생성과 발전 그리고 그들의 업적의 의미는, 간단한 말로 표현 할 수가 없고, 오늘날 수년간 바우하우스를 관통한 세계 산업 정신의 영향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새롭게 고안된 공간과 사물이 만든 이미지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훈련 받은 현대성의 관념적 주제이자 동시에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다.


바우하우스는 점차 산업 제조의 현실과 일반 대중의 사회적 니즈, 양자를 합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산업 원형을 가르치고 생산하는 기관이 되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금속공예를 제외한 가장 성공적인 바우하우스의 워크샵은 목공예였다. 1920년부터 바우하우스에서 수학한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는 1925년 ‘젊은 마스터’로 목공예 워크샵을 맡았다.

그는 파이프형 철제 가구를 발전시키면서 대량 생산으로 제공되는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기능적 가구라는 큰 도약을 이루었다.

자전거의 굽은 핸들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 브로이어의 정신적 도약은 토넷 체어(Thonet Chair)에 이르게 되었다.

강철관의 힘과 안정성을 가벼운 피복(고들버리세공, 직물, 가죽)과 결합시킨 그는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의자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같은 원리가 곧 테이블과 캐비닛, 책장, 책상, 침대, 복합 가구에 적용되었다.

바우하우스 (BAUHAUS. 출처 구글)


바우하우스 디자인 활동의 목표는 높은 정도의 기능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들이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김영일 이엘비엔티(EL B&T) 회장 (전 현대차 디자인 총괄) ykim@elb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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